나발니 죽음에 뭉치는 서방…삐걱대던 단일대오 강화되나

나발니 죽음에 뭉치는 서방…삐걱대던 단일대오 강화되나

유럽 각국, 자국 주재 러 대사 불러 잇따라 항의 미국·EU "러 추가제재 고려"…러 유엔대사 "서방이 나발니 죽음 정치화"
나발니 죽음에 뭉치는 서방…삐걱대던 단일대오 강화되나
꽃다발에 뒤덮인 故 나발니 사진
나발니 죽음에 뭉치는 서방…삐걱대던 단일대오 강화되나
(프랑크푸르트 AP=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러시아 영사관 인근에 놓인 러시아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진이 추모객들의 꽃다발로 뒤덮여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던 나발니는 지난 16일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수감 중 사망했다. 2024.02.19 [email protected]

나발니 죽음에 뭉치는 서방…삐걱대던 단일대오 강화되나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7)의 석연찮은 죽음에 서방이 일제히 러시아를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뭉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는 24일로 꽉 채운 2년이 되는 가운데, 최근 전선이 교착되고 전쟁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자 유럽과 서방은 전쟁 초반 때와는 달리 우크라이나의 지원에 주춤한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전쟁 발발 2주년을 코앞에 두고 나발니의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은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한 목소리로 맹비난하면서 흐트러졌던 단일대오를 재정비하려는 듯한 모양새다.
유럽 주요국에서는 19일(현지시간)에도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의 초치 행렬이 이어졌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스테판 세주르네 프랑스 외교부 장관은 이날 방문지인 아르헨티나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다시 한번 민낯을 드러냈다"며 프랑스 주재 러시아 대사의 초치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옥중 사망한 나발니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앞서 영국과 독일, 스페인 등도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들여 나발니의 죽음에 항의하고 정확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노르웨이 외교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나발니의 죽음을 논의하기 위해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곧 초치할 것이라며 "러시아 당국에 이번 죽음에 대한 책임과 투명한 조사의 중요성에 대한 노르웨이의 의견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와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도 러시아 대사 초치에 가세했다.
핀란드 외교부는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헬싱키 주재 러시아 대사를 초치한 것을 확인하면서 러시아에는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토비아스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장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나발니의 죽음에 항의하기 위해 러시아 대사를 불러들인 사실을 공개하면서 유럽연합(EU)이 러시아를 상대로 추가 제재를 고려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케 브라윈스 슬롯 네덜란드 외교장관도 "알렉세이 나발니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러시아를 위한 싸움에서 최후의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이 끔찍하다"며 "나발니의 시신을 그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돌려줄 것을 러시아 당국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고 정부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오던 나발니는 지난 16일 북극권의 한파 등 극한 환경으로 악명이 높은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나발니의 측근과 서방은 피살 의혹을 제기하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부에 책임을 묻고 있지만 푸틴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 중이다.
러시아 당국은 아직 그의 시신조차 유족에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
"나발니 사망 진상 규명하라"
(베를린 EPA=연합뉴스) 지난 18일 독일 베를린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안드레이 나발니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그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4.2.19

EU도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외교장관회의를 한 뒤 성명을 내고 "우리 파트너국과 긴밀한 조율 하에 러시아 정치 지도부 및 관련 당국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제재를 포함해 그들의 행위에 대한 추가적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또 나발니의 죽음에 대해 "러시아는 그의 급사에 대한 독립적이고 투명한 국제조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독일, 리투아니아, 스웨덴 등이 더 강력한 대러 제재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나발니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나발니 사망에 따른 대러시아 추가 제재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이미 제재를 하고 있지만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확인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나발니 사망 직후에도 긴급 회견을 통해 "푸틴이 나발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며 푸틴 대통령을 직격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한 하원에 계류 중인 우크라이나·이스라엘 등 지원을 위한 긴급 안보 예산과 관련, "공화당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의 위협과 우리의 의무로부터 도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미국 의회에서는 상원이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을 처리했지만,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강경파 등의 반대로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미 정부는 예산이 소진된 가운데 의회가 추가 예산을 마련해주지 않아 작년 말 이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더 보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대규모 병력을 증원하며 공세를 퍼붓고 있는 까닭에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서방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러나 작년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 관심사에서 뒷전으로 밀리며 이처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서마저 우크라이나 지원을 놓고 최근 균열이 감지되는 상황이었다. 쏟아지는 서방의 비판과 해명 요구와 관련,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서방이 나발니의 죽음을 정치화하고 있다며 반발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네벤자 대사는 나발니의 죽음에 대한 조사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고 정확한 사인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며 "우리의 서방 동료들은 그의 죽음이 푸틴 정권의 책임이라고 성급히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밤 이탈리아 로마의 중심 광장에서 수천명의 시민이 모여 횃불 행진을 하면서 나발니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등 전 세계 곳곳에서 나발니를 추모하는 행사가 잇따랐다.
19일 밤 로마 시내에 모인 나발니 추모 인파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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