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잠들지 않는 '남핵(南核)'…포크란 이후의 인도는 안전해졌을까

[논&설] 잠들지 않는 '남핵(南核)'…포크란 이후의 인도는 안전해졌을까

출처 =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SNS

출처 =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SNS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논설위원 = 인도는 1998년 5월 뉴델리 남서쪽 포크란 사막에서 다섯 차례 핵폭탄을 터뜨렸다. 분쟁 중인 파키스탄의 핵 위협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자체 핵무장의 길을 공식화한 것이다. 히로시마 원폭 두 배에 달하는 폭발력에 지구촌은 경악했다. 혹독한 제재가 뒤따랐다. 미국은 직접 원조와 일체의 차관을 끊었고 독일, 일본,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등 주요국들이 줄줄이 동참했다. 하지만 '겨울'은 길지 않았다. 핵비확산체제(NPT)에 가입하지 않았던 인도이기에 제재 약발이 크게 먹히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에 인도의 전략적 가치는 컸다. 1년 반도 안 돼 제재가 풀리기 시작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양국 관계는 정상화 궤도에 올랐다. 심지어 2006년엔 아예 미국 핵기술을 넘겨주는 원자력협정까지 맺었다. 핵실험 한지 10년도 안 돼 일어난 반전이다. 핵무장을 한 이웃이라는 동일한 지정학적 환경에 처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서울시 핵·미사일 방호 발전방안 포럼
서울시 핵·미사일 방호 발전방안 포럼

(서울=연합뉴스) 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핵·미사일 방호 발전방안' 포럼이 열리고 있다. 2023.11.2 [서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

2일 서울시가 주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본 서울시 핵·미사일 방호 발전방안' 포럼에선 독자 핵무장론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북한이 하마스식 공격을 가할 때 서울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느냐는 고민에서 나온 해법의 하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포럼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실현불가능한 목표 아닌가"라고 묻고 "자체 핵무기 보유는 우리를 지킬 최후의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확장억제 약속에 의문을 표시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진 상황에서 미국이 과연 핵보복을 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정 실장과 유사한 논지를 펴는 전문가들이 요즘 적지 않다. 실현 불가능한 한반도 비핵화 목표의 족쇄를 벗고 이제는 북한의 절대무기에 맞서 '핵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국제비확산체제를 떠받치는 NPT 체제에 회의를 표하며 아예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독자 핵무장을 과반이 지지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미국의 거듭된 약속에도 국민들이 안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지켜줄 테니 믿고 따라와'라는 식의 핵우산 정책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적극적 핵보장보다는 북핵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적 모호함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사회 저변에는 '핵우산은 어음, 핵무기는 현금'이라는 단순화된 인식이 의외로 팽배해있고, 이것이 남핵(南核)론이 힘을 얻는 배경이 되고 있다.

2017년 9월 북한 6차 핵실험
2017년 9월 북한 6차 핵실험

2017년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기상청 브리핑에서 북한 함경북도 풍계리 인공지진 발생 지역이 모니터에 나타나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면 포크란 핵실험 이후의 인도는 안전해졌을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불과 보름 만에 맞불 핵실험을 감행한 파키스탄과의 핵무기 개발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살얼음판 같은 지정학적 긴장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핵 균형'에 따른 억지효과보단 오히려 핵 대결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은 회고록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2019년 2월 핵전쟁을 벌일 뻔했다"는 비화를 술회하기도 했다. 포크란 사막에서 승부수를 던진 인도의 길을 한국이 따라간다면 어떨까. 초단기 핵무장론도 나오지만 독자 핵무장에 걸리는 추정 기간은 대략 최소 18개월에서 55개월(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이 과정에서 국제감시 시스템상 조기 탐지되면서 국제사회로부터 정치·외교·경제적으로 가혹한 제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상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은 북핵 위협을 '비상사태'로 규정하며 NPT를 탈퇴하고 대미 설득에 나서겠지만, 국제 비확산 질서를 수호하려는 미국과의 마찰과 갈등은 필연적이다. 한미동맹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고, '한국의 방어는 한국에 맡기자'는 식의 트럼프식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주한미군 철수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한국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제재 국면을 1~2년 안에 돌파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 커 보인다.

악수하는 한미 정상
악수하는 한미 정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결정적 문제는 한반도가 더 안전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의 핵무장을 구실로 북한이 보다 과감하게 핵 증강에 나서고 일본, 대만 등으로 핵 도미노가 이어지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가 이젠 핵 화약고가 될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국제안보전문가인 자간나트 팬더는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역내 핵무장한 국가가 많을수록 오판과 사고의 위험이 커지고 이것은 핵재앙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랜드(RAND)연구소가 최근 공동보고서에서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피하기 위해 미국이 확실한 핵보장을 해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언한 부분은 곱씹어볼 만하다. 지난 4월 한미 정상이 합의한 '워싱턴 선언'의 핵심인 핵협의그룹(NCG)을 실질적으로 가동하면서 핵보장의 전략적 명확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결국 목표는 평화 관리가 돼야 한다. 핵 대응 못지않게 미국, 중국과 북핵 문제를 적극적 의제로 삼으면서 외교적 수단도 고려해봐야 한다. 워싱턴 선언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진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북한과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와 외교를 확고히 추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rhd